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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에 겨울이 찾아오고 눈도 쌓여가니 슬슬 겨울 캠핑을 알아보고 있었다. 우리가 미네소타에서 캠핑을 다니는 곳은 대부분 county park 또는 state park에 있는 캠프그라운드인데, county park의 캠프그라운드의 경우는 9월 중순에서 10월 초까지만 운영을 한다. State park의 캠프그라운드도 대부분 10월 말까지만 운영을 하고, 연중 운영하는 곳은 많이 없다. 연중 운영을 하더라도 식수, 수세식 화장실, 샤워시설과 같은 편의 시설은 모두 폐쇄되고, 전지, 간이화장실, 등만 사용이 가능하다.
얼마 전 검색을 하다 우연히 미네소타 겨울 캠핑 중에 수세식화장실과 샤워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곳 모두 미네소타 북쪽에 있는 곳들이었는데, 한 곳은 와스카시 (Waskish) 근처에 있는 빅 보그 스테이트 레크리에이션 에이리어 (Big Bog State Recreation Area)이고 나머지 한 곳은 레이크 슈페리어를 따라 자리한 노스쇼 (Northshore)에 있는 테트구치 주립공원 (Tettegouche State Park)였다. 빅 보그 스테이트 레크리에이션 에이리어의 경우 트윈시티즈에서 대략 4시간 40분이 소요되는 곳이었고, 테트구치 주립공원은 트윈시티즈에서 3시간 30분가량 소요되는 곳이다. 이제까지 겨울 캠핑은 대부분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만 다녀왔기에 선택하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기간 동안 조금은 특별한 겨울 캠핑을 해보고 싶어서 테트구치 주립공원의 Baptism River Campground에서 화장실/샤워장에 가까운 사이트로 예약을 했다. 그렇게 캠핑사이트를 예약하고, 크리스마스 캠핑이니 특별하게 소고기 립아이, 족발, 닭똥집볶음, 짬뽕, 어묵탕, 등 캠핑 중에 먹을거리들도 준비했다.
캠핑을 떠나기로 한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이번 크리스마스가 미국 역대 최악의 폭풍으로 여행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불길한 내용의 뉴스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Minnesota's winter storm continues to affect travel"
캠핑 당일 트윈시티즈에서 출발을 할때는 기온이 낮기는 했지만 바람이 강하지 않아서 날씨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기를 바라며 테트구치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I-35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동안 점차 바람이 많이 불기는 했지만, 눈이 내리지는 않았고 도로 사정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덜루스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기온이 올라서 날씨가 괜찮아지려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덜루스를 지나 노스쇼로 진입하면서 고속도로 전광판의 사인은 “블리자드 경보 발효 중 (Billiard warning in effect)”로 변경됐다. 여전히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주변에 쌓여있던 눈들이 강한 바람에 날리면서 마치 눈 폭풍 속을 운전하는 기분이었다.
오후 4시쯤 테트구치 주립공원 비지터센터에 도착했지만, 비지터센터는 이미 문을 닫았고 바로 캠프그라운드로 향했다. 캠프그라운드까지 가는 길은 제설이 잘되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빙판이었기에 조금 미끄러워 조심히 운전하며 캠프그라운드의 입구에 있는 화장실/샤워장 건물에 도착을 했다. 우리가 예약한 사이트에 진입하기 위해 캠프그라운드를 한 바퀴 도는데, 다른 주립공원의 겨울 캠핑처럼 겨울동안만 운영을 하는 사이트들 위주로만 제설이 되어 있었다. 텅 빈 캠프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고 마침내 우리가 예약한 사이트에 도착을 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분명히 캠프그라운드 내 도로의 오른편에 있는 사이트였는데, 제설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차에서 내려서 사이트 번호를 확인해 보니 내가 예약한 사이트가 맞았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날은 곧 어두워지고 바람이 순간순간 강하게 불어 빨리 텐트를 쳐야지 했지만,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비지터센터에 전화를 해봤지만,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주립공원 캠프그라운드 예약 사이트에서 다시 확인을 해보니 내가 예약한 사이트는 예약 중으로 표시가 됐고, 맞은편 제설이 되어 있는 사이트는 예약이 없는 상태였다. 일단 제설이 된 사이트를 사용하고 다음날 아침 비지터센터에서 변경을 하면 되겠지 싶어 제설이 되어 있는 맞은편 사이트에 차를 세워두고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날씨는 어두워지고, 순간적으로 불어오는 강풍에 텐트를 설치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필이면 이날은 바람에 강한 빅아그네스 텐트는 두고 오고, 바람에 쥐약인 클램 파빌리온만 들고 와서 두세 번 설치를 시도하다가 마치 패러글라이딩을 하듯이 텐트가 날려가고 천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포기했다. 차에 있던 짐들을 모두 내리고 타프로 대충 덮어두고는 차 안에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차박 노숙을 하게 됐다.
밤 기온이 -11℉까지 떨어지고 여기에 바람까지 강하게 불다 보니 차문, 창문 틈새로 찬바람이 계속 들이쳤다. 다행히 이 사이트도 전기 사용이 가능한 사이트였기에 전기를 끌어다 차 안에서 히터와 전기장판을 틀고 콜맨 0℉ 머미 침낭 (Coleman® North Rim™ Adult Mummy Sleeping Bag)에서 버틸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동안 겨울 캠핑을 하며 맛있게 먹으려고 챙겨 왔던 음식들은 차에 그대로 모셔두고 우동 사발면으로 저녁을 대충 때우고 그래도 나름 겨울 캠핑이라고 기분이나 내자며 육포를 뜯으며 레드와인 한잔씩 하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날씨가 괜찮아지기를 바라면서 잠자리에 들었지만 차박을 위한 평탄화 작업이 전혀 안된 상태이기에 불편해서 잠을 자던 중간중간 계속 깼고, 그때마다 차창밖을 보며 날씨를 확인했다. 그래도 밤에 별들은 많이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날씨는 어제와 비슷하게 간간히 강한 바람이 불어서 텐트를 치기는 포기하고 아침밥을 간단히 챙겨먹으며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밤새 차밖에 내팽겨져 있던 캠핑용품들을 대충 정리하고, 이 캠프그라운드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인 겨울기간에 사용이 가능한 수세식화장실과 샤워실에서 대충 씻고 캠프그라운드를 나섰다.
겨울 캠핑 중에 가장 큰 걱정거리가 화장실과 샤워인데, 이 캠핑그라운드에서 겨울 시즌에도 이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인듯 하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주립공원은 간이 화장실만을 이용할 수 있어서 캠핑하는 동안 샤워는 안 하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날씨에 굴복해 캠핑을 포기하고 캠프그라운드를 나서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젯밤사이 바람에 쓰러진듯한 나무가 도로를 막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직접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주립공원을 빠져나왔다. 나무를 치우고 차로 돌아오는 짧은 순간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었다.
테트구치 주립공원에서의 첫 캠핑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던 슈피리어 호 (Lake Superior)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주변의 바위에는 얼음으로 뒤덮여 멋있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캠핑은 망했지만 오랜만에 슈피리어 호수를 보러 드라이브 온샘 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상 미네소타 테트구치 주립공원 (Tettegouche State Park)에서의 영하 23도 극동계 크리스마스 캠핑 이야기였다. 동계 캠핑은 변수가 많이 생길 수 있으니 가능하면 익숙하고 가까운 곳으로 가는 편이 좋을 듯하다.